사는이야기/나의 살던 고향은...

아삭 아삭 오이이야기

행복한 의자 2008. 8. 1. 15:10

며칠 동안 많이도 덥더니 오늘은  초록빛의 오이와 같이 싱그런 바람이  창문을 넘어 불어와 좀 살

만하네요.

 

요즘 시장에 가면  발은 짙은 초록색에 몸은 연한 녹색을 한 오이들 천지더군요. 까칠 까칠한 가시가

손에 닿는 느낌이 신선한 오이를 차게 흐르는 물에 씻어 길게 썬 다음 진한 빛깔을 한 고추장에 찍어

먹으면 더위마저 싹 가실 듯 하지요.

 

 

 

 

어린 시절 행복한 의자는 시골 집  옆 마당에 할머니가 심었던 오이가  노오란 꽃을 떨군 뒤 작은

열매를 맺어 아가 손가락만큼  자라나면   이 오이를 어른들 몰래 '똑' 따서 아작 아작 먹기를 아주 좋아

했답니다. 입 안에 가득 퍼지던 보드라운 연두색의 상큼한 맛을 너무 좋아해서요. 나중에 누구의

소행인가를 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꾸중을 들었지만 그래도 그 부드럽고 아삭 아삭한  맛의 유혹을

떨치지 못했고 매 해 여름이 오면 어린 오이들은 행복한 의자의 아주 좋은 군것질감이 되어 주었지요.

그래서 요즘도 재래시장에 가면 더러 만날 수 있는 어린 오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답니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어린 행복한 의자가  그리도 좋아했던 아가 오이는 위의 크기만 했던 거 같군요. 아, 당당하게 솟아오른

가시의 감촉이 손 끝에 그대로 전해오는 듯 하네요.

 

이와는 달리 할머니는 늙은 오이를 무쳐 드시길 아주 좋아하셨지요.

미처 사람들의 눈에 띄지 못한 채 오이잎새 뒤에서 소리없이  잘 자라 녹색은 버리고   엷은 갈색으로

몸피도 넉넉했던 늙은 오이 노각이 그 때 행복한 의자의 입엔 그리 맛이 없더군요.

한데 최근에 한 번  기회가 있어 먹어 보니  예전엔 미처 몰랐던 잘 여물어 두루 두루 찰진 맛이

느껴졌답니다.

 

 

 

 

아,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 맛에 대한 느낌도 달라지나 봅니다.

어린 오이가 주는 아삭함도 좋지만 시간과 함께 농익은 세월의 맛이 주는 넉넉함과 편안함도 역시

빼 놓을 수 없는 듯하네요.  이건 오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.

젊음의 풋풋함과 함께 연륜이 쌓인 어른들의 부드럽고 넉넉한 미소가 함께 소중한 이유를  오이를

보면서 생각해 봅니다.